로베르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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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로베르 슈만은 프랑스 제4공화국의 주요 인물으로 활동했던 정치인이다. 유럽 연합 구축과 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독일 화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2. 생애[편집]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접경 지역에 위치한 로렌 지방에서 민주파 천주교 집안에서 독일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독일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을 갖고있었고, 유럽 건설에 있어서 필수적인 독일 포용 정책을 펼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군으로 징병되었다. 전쟁 이후 프랑스 영토가 된 탓에 로베르 슈만은 프랑스 국적을 얻게 되고, 1919년에 32세의 나이로 모젤 지역 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1924년부터 1938년까지 민주파 천주교파 의원으로 활동한다. 193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로 뮌헨 협정에 동의한다. 1940년에 파리가 독일에 점령당할 위기에 처하자, 필리프 페탱에게 전권을 이양하는데 찬성하지만, 나치 협력에는 반대한다.
1946년에 재무부 장관을, 1947년부터 1948년까지 프랑스 총리를, 1948년부터 1953년 사이에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콘라드 아데나워, 장 모네, 폴 앙리 스파크와 함께 유럽 연합 구축에 힘쓴다. 1950년 5월 9일의 "슈만 플랜"으로 명명되는 연설에서 석탄과 철강 산업을 공유하면 한 국가가 독점할 수 없어 유럽 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1951년 4월 18일에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와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의 전신이 되는 오뜨 오또리떼 [1] 를 설립한다. 또 아데나워의 주장을 수용해 서독에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고작 5년 만에 전승국들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한다. 1955년부터 1961년 사이에 유럽 운동의 총재를 역임했다. 1958년부터 1960년 사이에 유럽 의회 총장이었다.
1962년에 은퇴하고 이듬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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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aute Autorité: 유럽 역사 최초의 회원국에게 결정을 강제할 수 있는 초국가적 행정기관이었다. 즉, 유럽 계획은 더 이상 단순한 주권국가들의 협력이 아닌, 일부나마 연방적 형태를 띄게 된 것이었다.